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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7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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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제 일요일, 내가 수락산 능선길을 걸으며 진달래꽃을 보며 좋아하고 있을무렵, 그는 세상을 떠났다. 시민 허세욱, 사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집회나 행사때 몇번 목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4월1일, 민주노동당 당원인 노동자가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는 뉴스를 들으며, 설마 내가 보았던 누군가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생과 사의 경계 어느 지점쯤일까, 그런 걱정으로 며칠. 다행히 생사의 고비는 넘었다고 들었다. 다음에는 치료가 문제였다. 치료를 거부하는 가족, 그들을 설득하는 대책위. 며칠 후에야 겨우 수술이 가능했다. 전신에 3도 화상. 내 친구는 3도 화상 입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직 못 봤다고 했다. 우린 말 없이 긴 한숨만 쉬며 밤길을 걸었다.

성명이며 소식이며, 회원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치료비 모금은 어떻게 할까. 우리 사이트에는, 회원 사이트에는 어떻게 반영할까. 그런 실무적인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다. 바빠서 차라리 좋았다. 병원 앞에서 잠시 당직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끔찍한 고통, 1차 수술 이후에, 병원에서조차 깨워 놓을 수 없는 고통. 고통이 너무나 커서 병원은 아예 그를 일주일간 수면 상태로 두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내가 들은 소식은, 열 손가락을 모두 잘라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타버린 피부를 긁어내고 손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놓고, 의사들이 고심 중이라는 상황이었다. 듣는 것조차 끔찍한 상황. 나는 최선을 다해 안 듣고 안 돌아봤다. 짐작하는 것만도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우리 회원들이 낸 치료비 모금이 얼마인지 확인하고 재단 등에서 후원을 받을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그에 관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것으로. 나는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요일 오후 2시경,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그냥 업무를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을 올리고 집회일정을 알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 15일 저녁, 병원 앞에서 조문이 있었다. 이미 가족들이 유해를 가져갔고 일절의 조문이 금지된 상황에서, 시신도 없는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사람들은 그의 사진 앞에 국화를 놓고 절을 했다. 액자 속 허세욱은 그냥 웃고 있을 뿐인데. 울어대는 사람들을 보니, 그의 죽음이 실감났다. 우리 사무실에도 간단하게 분향소를 차렸다. 작년쯤 참여사회 인터뷰를 하며 찍은 사진 속 그는 더없이 환하게 웃고만 있다. 분향소 뒤에 걸 플래카드를 맞추고 테이블을 하얀 종이로 씌우고 하얀 국화를 갖다 놓고. 그리고 다시 내 책상 앞에 앉아, 변함없이 일을 하고 있다.

분신도 죽음도 실감나지 않는다. 87년 이후 20년이다. 2007년까지 이런 지랄같은 상황을 보며 살아야 할까. 나는 그와 몇번 마주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그냥 조용한 사람이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한 사람을 이토록 극단의 저항으로 내모는 이 상황이 절망스럽다. 오가며 만났을때. 진작 인사라도 드렸다면, 우연히라도 이런 극단의 저항을 말릴 기회라도 있지 않았을까. 후회와 탄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3일째, 그의 가족들이 이미 화장하고 분골까지 한지 이틀째인 오늘, 나는 그냥 그의 사진 앞에 놓인 국화가 시들지 않았나 확인하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일을 할 뿐이다. 꾸역꾸역 숨을 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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