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entries contain '나라걱정'
- 2007/08/06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 2007/03/08 한미FTA 협상 눈높이, 이미 발바닥인데 뭘 더 낮추나
- 2007/02/08 [97년 이후의 한국사회의 성찰] 기업사회로의 진입과 시사저널 사태 (2)
- 2007/01/05 아직도 밀운불우
한미FTA 협상 눈높이, 이미 발바닥인데 뭘 더 낮추나
오늘부터 시작된 8차 협상, 뉴스에서는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각오를 "체결을 위한 마지막 협상이니만큼, 눈 높이를 낮춰 체결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전한다.
입안의 포도가 순간 쓴맛으로 변했다. 아... 이 정부의 착각의 끝은 어디인가.
협상 시작도 하기 전에 4대 선결과제부터 덥썩 안겨놓고 테이블에 앉아놓고, 협상 내내 미국 맞은편에서 우리는 의자 위도 아닌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진행해 놓고... 눈 높이를 어떻게 더 낮추나. 땅을 파고 들어가겠다는 것인지. 이미 눈은 발바닥에 달려있는데, 더 낮출 눈높이가 있긴 해?

전문가 54인이 협상 종합평가를 채점했는데, 최저 -5.0점 ~최고 +5.0점 기준에서, 받은 점수는 -4.25점. 거의 바닥 수준이다. >>전문가 54인, 종합평가 보기
각계각층 870명도 긴급 시국회의를 열어 '양보 일변도 협상 타결에 반대'하며, 이 '질주를 저지하자'고 대국민 호소문을 냈다. >>시국회의 관련자료
어제 뉴스를 보니, 미국의 한 의원은 "뼛조각이 있던 없던, 한국은 미국 소고기를 수입해야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던데, 그 뻔뻔한 작태를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놈들이야 지들 이익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이놈의 정부는 어쩌려고 이러는지. 아주 속이 터진다. 속이 터진다.

이미지에 링크걸기, 왜 계속 안되지?
>>만화보기
[97년 이후의 한국사회의 성찰] 기업사회로의 진입과 시사저널 사태
화요일, PD수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생생하게 전달받고 나니,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 2007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삼성'이란 '최고'(품질이나 가격)의 상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기업, 신 귀족 그 오너 일가는 신 왕족 등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나는 그 기업이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생산해 왔으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찬사나 대우에 대해서는 큰 반감은 없다. 나 역시 삼성제품을 선호하고 그 품질과 서비스를 신뢰하는 한 명의 소비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호감이 자주 급 비호감으로 바뀌는데, 그 지점은 그 파워풀한 돈과 권력을 남용할 때이다. 기업도 기업인도 사회적 룰(대표적으로 법)을 지켜야 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이 룰을 잘 지켜야 한다. 경쟁은커녕 이들은 보통 사람(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니 같은 선상에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불균형적인 힘을 가졌다. 그런 이들이 '기본적 룰'마저 지키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고 해보자.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들이 기침하면 나라가 들썩이고 손동작 하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진다. 삼성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선 그들이 우리 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삼성이 휘청하면 나라도 휘청한다. 그렇게 중요한 집단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혹시라도 잘못될 가능성이 보인다면 염려하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번째도 비슷한 이유인데, 그들이 가진 힘이 다른 집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이 권력의 불균등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삼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삼성이 '사소한 문제'에서 무리수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적인 룰을 지켜가면서도, 삼성이라면 충분히 마음껏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왜 사소한 문제에 과도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고 사회적인 지탄을 자초할까. 정말 이해가 안된다. 삼성이 직접적으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를 야기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태의 시발은 삼성이었다. 경영진이 직장 폐쇄라는 아마도 한국 언론사상 가장 어이없는 대응을 하도록 만든 배경은, 광고로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삼성 스타일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점점 많은 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갑갑하다. <시사저널>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폐쇄까지 가지 않았지만, 기사가 삭제/대체되거나 물타기 되었던 수많은 사례는 그냥 흐르는 물처럼 흘러왔을 것이고, 지금도 어디선가는 그럴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각 언론사들이 광고로,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순응하던지, 변화시키던지, 아니면 외면하던지... 우리 사회는 어떤 해답을 찾아갈까.
마음에 온통 구름이 끼는 요즘, 한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우리사회 대표적인 진보적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가 낸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1997년을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다시 태어나는' 수준의 변화를 겪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작동 기제가 변했다고 본다. 변화 그 자체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어떻게 변했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김동춘 교수의 설명은 '기업사회로의 변환'이다. 한국사회가 기업사회인가? 그의 설명은 '그렇다'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동춘 교수가 제시한 '기업사회' 판단 기준이다. 우리사회의 특성을 뽑아놓은 듯하다.
1. 자본의 고유한 권력인 생산 지휘권이 극대화되고 사회 영역으로 확대 된다.
2. 정치/사회가 기업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3. 기업의 생산성이 곧 국가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간주된다.
4. 1인1표의 원리가 아닌 소유 지분만큼의 권리원칙이 기업 외의 사회 조직에도 적용된다.
5. 대기업 및 기업가 단체가 단순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까지 간섭한다.
6. 정치활동, 정책생산, 법원, 미디어 등은 주로 대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7. 국민, 시민, 주민 혹은 기업의 판매망 안의 모든 사람들은 곧 소비자로 불린다.
8. 모든 정부/사회조직의 우두머리는 경영자 CEO를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설정한다.
9. 조직의 목표가 기업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 예를 들면 교회와 학교까지도 기업의 모델을 따라서 자신을 재조직한다.
10. 정치/사회 엘리트층까지도 주로 기업 경영자 출신이 차지하게 된다.
11. 노조활동은 대체로 기업 경영의 방해물로 간준된다.
12. 행정부는 기업 조직을 모델로 한다. 정부 부처 중에서는 경제부처가 다른 모든 부처를 압도한다.
13.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의 사회과학이 되고, 또다시 회계학과 경영학이 경제학을 대신한다.
14. 경쟁력이 없는 것은 곧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공공성은 곧 무책임과 동일시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아니 해법을 찾아야하는지부터 따져보자. 흔히 하는 말로, '아예 효율서과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정부와 정치를 모두 담당하면 좋지 않은가"라고 한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조직의 목표가 '이윤추구'인 기업에게, 교육과 복지는 물론 국가 최후 보루인 안보까지 맡길 수 있을까? 맡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나머지 해답은 책에서 찾길. (
PS. PD수첩을 보고 나니, 이제 삼성에게 잘못했다 소리칠 집단이 누가 남았을까 따져 보았다. 가장 먼저 '참여연대'가 떠올랐다. 정부나 대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지 않으니, 이러한 경제적인 독립이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참여연대가 작년에 낸 '삼성보고서'(http://www.samsungreport.org/)를 다시 읽어보게 된다.
아직도 밀운불우
지난 해부터,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던 일이 있었으나, 계속 논의만 될뿐 실행되지 못하고 있고. 원인 제공자는 나다. 하지만, 나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건 나중에 말하도록 하고.
우리사회도 그렇다.
교수신문이 2006년 한국 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선정했다.
주역(周易) 소과괘(小過卦)의 괘사(卦辭)에 나오는 '밀운불우'는 '비가 오기 전에 먹구름만 자욱하듯 일의 조건은 갖추었으나 징조만 나타나고 완전히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암울한 한해를 보냈다는 점에서, 밀운불우가 꼽힌 것이다.
대선이 있는 올해는, 향후 10년 혹은 100년의 변화를 태동할 시기로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좌표 설정과 실행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져야 할 시점이다. 아니, 이미 벌어졌어야 옳다. 내가 눈이 어두워서 일까.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비판과 등대 역할을 해야할 언론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고 정부나 학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주제로 강좌를 기획하자고 했는데, 둘러봐도 앞이 안 보인다.
한겨레신문은 87년 6월 항쟁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갈 생각인가보다. 며칠전부터 87년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던 이들의 변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왜 다시 386?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올해가 87년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숫자 상으로는 의미있는 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화의 분수령을 이룬 87년 이후, 우리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심화시켰는가 돌아보면... 글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물론 당시와 비교하면, 진일보한 것은 맞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삶에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신문이 개인적 삶의 궤적을 쫒는 것으로 87년 이후 20년을 돌아볼 것이 아니라, 좀더 구조적인 시각으로 우리사회 곳곳을 진단하고 분석했다면 어떨까 싶었다. 아직 연재 중이니, 앞으로 그런 내용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어디 쯤에 서 있는지, 한겨레적 시각으로 분석해 주면 고맙겠다.
다른 신문은...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대선용 바람잡이 말고는 그다지 인상깊은 내용이 없었다. 읽게 되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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